목포,함평,무안지역

목포,함평,무안지역
목포
5월 21일
오후 2시경 광주에서 빠져나간 무장시위대들이 광주고속버스와 택시에 분승하여 목포에 도착했다. 이들은 차를 타고 목포 시가지를 돌며 광주 시민의 피해상황과 계엄군의 학살만행을 알리는 가두방송을 하며 목포시민의 궐기를 호소했다.

가두방송을 듣고 나온 시민들은 목포역 광장에 모여 시위대에게 빵과 음료수를 제공하고 '김대중 석방', '전두환 물러가라' 등의 현수막을 시위차량에 달아주며 열렬히 환영했다.

이때쯤 광주에서 온 시위차량중 일부는 목포청년들을 싣고 광주 방향으로 빠져나갔다. 목포에 남아 있던 시위대는 목포 태원여객 등에서 획득한 차량에 탄 청년들과 함께 계엄군의 만행을 전혀 보도 하지 않고 정부의 발표만을 일삼는 방송국을 찾아갔으나 목포MBC·KBS방송국은 텅 비어 있었고 기계도 일부 파손된 상태였다. 이들이 계속 시가지를 돌며 시민들의 참여를 호소하자, 자가용 등 20여 대의 차량이 시위에 합세해 자정이 넘도록 차량시위를 벌였다.

자정을 전후해 대다수의 시민이 돌아간 이후에도 남아서 시위를 하던 청년, 학생들은 국민을 위해 쓰여져야 할 세금이 자신들을 죽이는 무기로 만들어 진 것에 격분 세무서, 해양경찰서 등으로 몰려가 기물을 부수고, 항동파출소를 공격하여 획득한 무기로 무장을 했다.
5월 22일
'날이 새자 각 고등학교는 학교장 재량으로 휴교령이 내려졌다. 이날부터 시내버스와 택시의 운행이 중단되었으나 시민들은 아침부터 역광장으로 모여들었다.

12시경 질서를 바로잡고 사태수습을 모색하기 위해 시장·목포대학장·목사·재야인사들이 모여 회의를 하였다. 이 회의에서 '목포 시민 민주투쟁위원회'를 구성하고, 오후 3시 목포역 광장에 나와 '제1차 민주헌정 수립을 위한 시민 궐기대회'를 개최했다

민주화투쟁위원회에서는 다음날 11시에 궐기대회가 있다는 홍보를 하고, 각, 동별로 자치대를 만들 것과 무기회수에 응해 줄 것을 당부하고 시가행진에 들어갔다. 시가행진 후 밤늦도록 차량과 총기회수 작업을 했다.
5월 23일
오전 11시에 궐기대회가 시작되었다. 궐기대회 도중 "날마다 고생하는 시위대를 위해 식사제공에 앞장서자"는 안내방송으로, 시민들은 시위가 끝나는 날까지 동별 혹은 개별적으로 밥을 지어왔다.

오후 6시경 회수된 총기 240정, LMG 2정을 목포 JC회장이 해군 제3해역사에 반납했다.

그날 밤 8시에 10만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4백여 개의 횃불을 동원한 시가행진이 있었으며, 횃불시위를 마친 시민들은 역광장에 모여 철야농성을 했다.
5월 24일
목포역에 분향소를 설치, 먼저 가신 영령들의 명복을 비는 분향행렬이 줄을 이었고, 22일부터 중단된 시내버스가 이 날부터 정상운행 되었다.
5월 25일
2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2시 30분부터 역광장에서 '목포시 기독교연합 비상 구국기도회'가 개최되었다. 이때 "광주시민혁명에 대한 목포지역 교회의 신앙고백전 선언문"을 채택하여 낭독하였다
5월 26일
시민들은 각 동별로 플래카드를 들고 나와 궐기대회에 참석 후 시가행진을 하고, 이후 날이 어두워지자 횃불시위를 벌렸다
5월 27~28일
오전 6시경 전남도청에 계엄군이 진입하여 광주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오전 11시부터 궐기대회을 시작하여, '우리 겨레와 세계 자유민에게 보내는 목포 시민의 결의문'을 채택하고 시가행진을 했다. 오후 8시에 시작된 횃불시위가 밤늦게 끝나고 집행부에서 해산을 결정하자, 고등학생을 중심으로 한 시가행진이 28일 새벽 2시에 시위는 종결되었다
무안
5월 21일
5월 21일 오후 2시경 광주 무장시위대 30여명이 탑승한 버스가 군민과 합세하여 무안군 일대를 시위하며, 무안경찰서, 청계지서, 현경면지서를 공격하여 M1 소총, 카빈 소총 등 다량의 총기류를 획득했다. 오후 3시 해제면지서에서 M1 10정, 카빈 20정을 획득했으며, 이후 망운면지서, 망운면 운암지서 등을 차례로 공격하여 총기를 획득했다.
함평
5월 21일
오후 1시경 고속버스, 트럭 등 10여대에 분승한 광주의 시위대가 함평읍에 도착하자 분위기에 들떠 있던 함평읍민들은 대대적인 환영을 하며 군중시위를 벌렸다. 시위대들은 함평 신광지서 등을 접수하여 총기 100여정, 실탄 2박스 등의 무기를 확보했다. 이들은 저녁 8시경 광주지역으로 진입을 시도하다 계엄군의 외곽지역 봉쇄로 광주로 진입하지 못하고 다시 함평으로 돌아 왔다
5월 22일
아침부터 수많은 시위 군중들이 집결하여 시위를 벌이다 오후에는 시위 차량에 태극기를 꽂은 채 해남, 영광 등지로 빠져나갔으며 도중에 엄다지서 무기고 등을 공격하여 획득한 다량의 무기를 무안을 거쳐 목포로 반입했다


시민 만족도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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