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대별로 보는 10일간의 5ㆍ18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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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 일요일, 맑음
- 09시40분5월14일에서 16일까지 평화로운 민족민주화성회에서 광주 학생과 시민들은 비상계엄이 확대되면 도청앞 분수대에서 모이자고 약속했다. 이 약속을 기억한 전남대 학생들이 정문에서 광주에 진주한 7공수부대와 접전
- 10시00분학생들이 “계엄해제하라” “휴교령 철폐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항의시위
- 10시15분곤봉을 휘두르는 공수부대원들의 진압으로 학생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짐
- 10시20분“금남로로 가자”는 구호와 함께 학생들이 금남로로 이동하기 시작
- 15시40분유동3거리에 공수부대가 등장하면서 무자비한 진압작전 감행
- 19시02분계엄사령부, 광주지방 통행금지시간이 저녁 9시로 앞당겨졌다고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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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남로를 장악한 계엄군
5월 19일 월요일, 오후부터 비- 03시00분증파된 11여단 병력, 광주역 도착
- 09시30분시민들이 계엄군의 무자비한 탄압에 맞서 임동 · 누문동 파출소 방화
- 10시00분시민들 수가 점차 불어나면서 금남로에서 공수부대원들과 투석전 전개
- 14시40분조선대로 철수했던 공수부대가 다시 투입되어 무리한 진압작전 전개
- 15시00분시내 기관장 및 유지들, 회의를 갖고 시위 진압을 완화하도록 건의
- 16시30분계림파출소 근처에서 계엄군의 장갑차가 시위군중에 의해 포위되자 시민을 향해 발포, 첫 발포로 조대부고생 김영찬이 계엄군의 총에 의해 부상당하고, 이 사실이 알려지자 계엄군의 과잉진압에 분노한 시민들이 투쟁에 나섬
- 20시00분수 만 명의 시민들 “전두환 타도”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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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일 화요일, 오전에 약간의 비
- 8시00분고등학교 휴교조치
- 10시20분카톨릭센터 앞에서 남녀 30여명을 속옷만 입혀진 채 심하게 구타당함. 공수부대와 시민간의 공방전 계속
- 18시40분광주시내 곳곳에서 공수부대의 만행을 직접 목격하고 겪은 운전기사들에 의해 무등경기장에서 금남로로 200여대의 택시가 전조등을 켜고 경적을 울리며 차량시위를 벌이자 시위대 분위기 고조
- 20시10분시민들 도청을 향해 금남로, 충장로, 노동청 방면에서 공수부대, 경찰과 대치
- 21시05분노동청 쪽에서 시위대 버스가 경찰저지선으로 돌진하여 경찰 4명 사망
- 21시50분계엄하에서 군부의 검열을 받던 언론이 과잉진압 행위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자 시민들 거센 항의를 하며 광주MBC 건물 방화
- 23시00분가장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진 광주역 광장에서 무자비한 유혈진압에 항의하던 비무장 시민들을 향해 발포, 시민 2명 사망
금남로에 모여든 차량시위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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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군과 시민들 간의 공방전
5월 21일 수요일, 맑음- 00시35분노동청 방면에서 군중 2만여 명이 계엄군과 공방전 전개
- 02시18분시외전화 두절
- 04시00분시민들이 광주역 광장에서 시체 2구를 리어카에 싣고 금남로에 등장, 이 소식을 들은 시민 수십만 명이 항쟁에 적극 동참함
- 04시30분광주KBS 건물 방화
- 08시00분시위대, 광주공업단지 입구에서 20사단 병력과 충돌
- 10시15분실탄 지급받은 공수부대원 맨 앞으로 교체
- 10시19분광주세무서 건물 전소
- 11시10분대형헬기, 도청광장에 도착
- 12시59분아시아자동차공장에서 몰고 온 장갑차 1대 도청광장으로 기습 진출
- 13시00분도청 스피커에서 애국가 울려 퍼지면서 공수부대 사격 시작
- 13시20분청년들이 금남로에서 공수부대의 집중사격을 받고 계속 쓰러짐
- 14시15분도지사, 경찰헬기에서 시위해산 종용하는 설득 방송
- 14시35분시민들이 아시아자동차공장에서 군용트럭, 장갑차 수십대 획득
- 14시40분시민들이 지원동의 탄약고에서 TNT 입수
- 15시48분공수부대원들이 주요빌딩 옥상에서 시위대를 향해 조준사격
- 16시00분화순, 나주지역에서 무기 획득한 시위대들이 도청 앞에서 시가전 전개
- 16시43분학생들, 전남대병원 옥상에 기관총(LMG) 2대 설치
- 17시30분공수부대, 도청에서 조선대학교로 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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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2일 목요일, 맑음
- 09시00분도청광장과 금남로에 시민들 집결
- 10시30분군용헬기 공중선회하며 “폭도들에게 알린다”는 내용의 전단 살포
- 11시25분적십자병원 헌혈차와 시위대 지프가 돌아다니며 헌혈 호소
- 12시00분도청 옥상의 태극기가 검은 리본과 함께 반기 게양
- 13시30분시민수습위 대표 8명이 상무대 계엄분소 방문, 7개항의 수습안 전달
- 15시08분서울서 대학생 5백여명 광주 도착, 환영식 거행
- 15시58분시체 18구를 도청광장에 안치한 채 시민대회 개최
- 17시18분수습위 대표, 상무대 방문결과 보고
- 17시40분도청광장에 시체 23구 도착
- 21시30분박충훈 신임국무총리, “광주는 치안 부재상태”라고 방송
상무관에 안치된
희생된 시민들의 시체 -
시민군을 위해 주먹밥을 만들어
서로 나누는 공동체 정신5월 23일 금요일, 맑고 한때 흐림- 08시00분학생들, 시민들 금남로 일대 등 자발적 청소에 나섬
- 10시00분시민 5만여명이 도청광장에서 집회
- 10시15분학생수습위 자체 특공대 조직하여 총기 회수작업 시작
- 11시45분도청과 광장주변에 사망자 명단과 인상착의 벽보 게시
- 13시00분지원동 주남마을 앞서 공수부대가 소형버스에 총격, 승객 18명중 17명 사망, 단 1명만 생존. 이때 부상을 당한 2명을 주남마을 뒷산으로 끌고가 살해함. 이곳에 묻혀있던 시신은 5․18 직후 주민의 신고로 발굴됨
- 15시00분제1차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계엄사의 경고문 전단이 시내 전역에 살포
- 19시40분최초 석방자 33명 도청광장에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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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4일 토요일, 오후에 비
- 13시 20분공수부대, 원제마을 저수지에서 수영하던 소년들에게 사격, 중학교 1학년생이었던 방광범군은 좌측머리에 총탄 관통되어 사망함.
- 14시 20분송암동서 퇴각하던 공수부대와 잠복해있던 전교사부대간의 오인 총격전 발생, 이후 오인사격 화풀이로 인근 무고한 주민들을 다수 살상함
- 14시50분제2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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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5월 25일 일요일, 비- 11시00분김수환 추기경의 메시지와 구호대책비 1천만원 전달
- 15시00분제3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 17시00분재야 민주인사들, 김성용 신부의 4개항 수습안에 대해 만장일치 채택
- 21시10분학생수습대책위원들, 범죄발생 예방과 식량공급 청소문제 등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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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6일 월요일, 아침 한때 비
- 05시20분계엄군, 화정동 쪽에서 농촌진흥원 앞까지 진출
- 08시00분시민수습대책위원들, 계엄군의 시내진입 저지를 위해 ‘죽음의 행진’ 감행
- 10시00분제4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 14시00분학생수습위원회, 광주시장에게 생필품 보급 등 8개항 요구
- 15시00분제5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 17시00분학생수습위원회 대변인 윤상원, 외신기자들에게 광주상황 브리핑
- 19시10분시민군, “계엄군이 오늘밤 침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공식 발표, 어린 학생들과 여성들을 귀가조치 시킴
- 24시00분시내전화 일제히 두절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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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군의 광주진압 후
굴비처럼 엮여 끌려가는 시민들5월 27일 화요일, 맑음- 03시00분탱크를 앞세운 계엄군 시내로 진입하기 시작. “ 계엄군이 쳐들어옵니다. 시민 여러분,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라는 여성의 애절한 시내 가두방송
- 04시00분도청 주변 완전 포위, 금남로에서 시가전 전개
- 04시10분계엄군 특공대, 도청 안에 있던 시민군들에게 사격
- 05시10분계엄군, 도청을 비롯한 시내전역 장악하고 진압작전 종료
- 06시00분계엄군, 시민들에게 거리로 나오지 말라고 선무 방송
- 07시00분3공수, 7공수, 11공수부대 20사단 병력에 도청 인계
- 08시50분시내전화 통화 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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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05 2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