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간의 기록 5·18 연표

10일간의 기록 │5・18 연표│

* ‘5월18일 맑음’ 중 발췌 정리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발생.
1970년
전태일 분신 사망.
1972년
유신 헌법 제정.
1978년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에게 ‘똥물 투척 사건’ 발생.
1979년
10·26 사건 발생/ 12·12 군사 반란 발생, 신군부 등장.
1980년
서울의 봄(전국 대학 총학생회 부활, 병영 집체 훈련 거부 운동)
5월 14일 전국 27개 대학 총학생회장단 거리 시위를 결의.
5월 15일 서울 시내 대학생 10만여 명 밤늦게까지 도심서 시위, 서울역 회군.
5월 17일 예비 검속, 비상계엄령 전국 확대.
5월 18일(일요일, 맑음) 5·18민주화운동 발생.
오전 전남대 정문에서 대학생들과 7공수 부대 충돌, 공수 부대원들의 폭력 진압, 학생들 금남로로 이동.
15시 30분경 유동 3거리에 공수 부대가 등장, 무자비한 진압 작전 감행.
5월 19일 (월요일, 오후부터 비) 첫 발포.
전날(18일) 계엄군에게 영문도 모른 채 구타당했던 청각 장애인 김경철 씨 사망.(최초 희생자)
오전 10시 시민들 금남로에서 공수 부대원들과 투석전 전개.
16시 30분 계림파출소 근처에서 계엄군의 장갑차가 시위 군중에 의해 포위되자 시민을 향해 발포, 고등학생 김영찬이 계엄군의 총에 의해 부상당함.(첫 발포)
5월 20일 (화요일, 오전에 약간의 비) 차량 시위.
8시 00분 고등학교 휴교 조치.
18시 40분 공수 부대의 만행을 직접 목격하고 겪은 운전기사들, 무등경기장에서 금남로로 차의 전조등을 켜고 경적을 울리며 차량 시위 나섬.
21시 50분 광주의 진실을 알리지 않는 언론에 대한 시민들의 항의 과정에서 광주 MBC(문화방송국) 건물이 불에 탐.
23시 00분 광주역 광장에서 무자비한 유혈 진압에 항의하던 시민들을 향해 발포, 사망자 다수 발생.
5월 21일 (수요일, 맑음) 투사회보 발간
4시 00분 시민들이 광주역 광장에서 발견된 사체 2구를 리어카에 싣고 금남로에 등장, 이 소식을 들은 시민 수십만 명이 항쟁에 동참.
4시 30분 광주 KBS 건물이 불에 탐.
13시 00분 도청 스피커에서 애국가 울려 퍼지면서 공수 부대 집중 사격 시작.
13시 30분 평화시장 부근에서 임신부 최미애 사망.
16시 00분 화순, 나주 지역에서 무기 획득한 시위대 도청 앞에서 공수 부대에 맞섬. (시민군 등장)
17시 30분 공수 부대, 도청에서 시 외곽으로 철수.
5월 22일 (목요일, 맑음) 광주 공동체.
9시 00분 도청 앞 광장과 금남로에 시민들 집결.
10시 30분 군용 헬기 공중 선회하며 “폭도들에게 알린다”는 내용의 전단 살포.
11시 25분 적십자병원 헌혈차와 시위대 지프가 돌아다니며 헌혈 호소.
12시 00분 도청 옥상의 태극기가 검은 리본과 함께 반기 게양.
13시 30분 시민수습위원회 대표 8명이 상무대 계엄분소 방문, 7개 항의 수습안 전달.
15시 58분 시민대회 개최, 수습위 대표가 상무대 방문 결과를 보고.
21시 30분 박충훈 신임 국무총리, “광주는 치안 부재 상태”라고 방송.
5월 23일 (금요일, 맑고 한때 흐림) 총기 회수
8시 00분 학생들과 시민들 자발적으로 금남로를 비롯한 시내 청소.
10시 00분 시민 5만여 명이 도청 광장에서 집회.
10시 15분 학생수습위원회 총기 회수 작업 시작.
15시 00분 도청 앞 광장에서 제1차 범시민궐기대회 개최.
19시 40분 석방된 시민 33명 도청 광장에 도착.
5월 24일 (토요일, 오후에 비)
13시 20분 공수 부대, 원제 마을 저수지에서 수영하던 소년들에게 사격, 중학교 1학년생 박광범 사망.
14시 20분 송암동에서 계엄군들 사이에 오인 사격으로 총격전 발생, 군인 다수 사망하거나 부상 입음. 화풀이로 인근 마을에 사는 무고한 주민들을 학살.
14시 50분 도청 앞 광장에서 제2차 민주 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5월 25일 (일요일, 비)
15시 00분 도청 앞 광장에서 제3차 민주 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5월 26일 (월요일, 아침 한때 비) 죽음의 행진.
5시 20분 계엄군 탱크 시내 방향으로 진출.
8시 00분 시민수습대책위원들 계엄군의 시내진입 저지를 위해 ‘죽음의 행진’에 나섬.
10시 00분 도청 앞 광장에서 제4차 민주수호 범시민궐기대회 개최
15시 00분 도청 앞 광장에서 제5차 민주수호 범시민궐기대회 개최.
17시 00분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외신 기자들에게 광주상황 브리핑.
19시 10분 시민군, “계엄군이 오늘밤 침공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공식 발표, 어린 학생들과 여성들을 집으로 돌려보냄, 시내에 남아 있던 외국인 207명 철수.
24시 00분 시내 전화 일제히 끊어짐.
5월 27일 (화요일, 맑음) 마지막 항쟁
3시 00분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 시내로 진입 시작.
4시 00분 계엄군 도청 주변 완전 포위 진압 작전 전개.
5시 10분 계엄군, 도청을 비롯한 시내 전역 장악하고 진압 작전 종료.
6시 00분 계엄군, 시민들에게 “거리로 나오지 말라, 경찰과 공무원은 9시까지 소속 관서로 복귀하라.”라고 방송.
1982년
「임을 위한 행진곡」 작사, 작곡
1983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1986년
서울 명동성당에서 5·18민주화운동을 담은 비디오 「오, 광주」 상영.
1987년
천주교 광주교구 금남로 카톨릭센터에서 「5·18사진전—오월 그날이 오면」 개최.
1988년
국회 5·18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구성, ‘광주 청문회’ 열림.
1993년
김영삼 대통령 5·13 담화에서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처벌을 역사에 맡기자.”라고 발표.
1994년
5·18 학살 책임자 고소 고발 운동5, .18 문제 해결 5원칙 제시.
1995년
5·18민주화운동 특별법 제정, 전두환·노태우와 12·12군사반란, 5·18민주화운동 관련자들 “내란 및 내란목적살인죄”로 구속.
1996년
전두환 노태우 재판, 12·12군사 반란 및 5·18 내란 혐의 재판.
1997년
5월 18일 국가 기념일 제정, 전두환 노태우 반란 수괴, 내란 목적 살인죄 대법원 확정 판결.
1999년
상무대 영창 복원.
2000년
광주인권상 제정.
2001년
광주 민주 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제정.
2002년
국립5·18민주묘지 승격.
2011년
5·18민주화운동 기념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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