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을 위한 행진곡

임을위한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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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시기
1982. 3월
만든이
원작 : 백기완 시〈묏비나리〉/ 작곡 : 김종률   작사 : 황석영, 김종률
윤상원열사(좌)와 박기순열사(우)
윤상원열사(좌)와 박기순열사(우)의 영혼결혼식을 위한 노래극〈넋풀이-빛의 결혼식〉을 제작하여 공연하였으며 마지막 부분에 함께 부르는 곡이 “임을 위한 행진곡”이며 ’82년부터 민주화의 상징곡으로 시민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즐겨 불렀다.
탄생과정
전두환의 철권통치가 극에 달했던 1982년. 광주 민중 문화인들의 사랑방 구실을 했던 소설가 황석영씨의 집(현 문화예술회관 자리․북구 북문대로 60번지)에 황씨를 비롯, 김종률·전용호·오창규씨, 군복무 중 휴가를 나온 김선출씨 등이 모여들었다.
황석영씨 집 거실에 모인 이들은 집 밖으로 소리가 새나가지 않도록 창문에 두꺼운 군용 담요를 덮어씌운 후 노래극을 진행했다.
황석영씨가 총 연출 및 감독을 맡았고, 극단 '광대' 출신의 전용호씨가 '조연출'을 맡았다. 전남대 경제학과 78학번이었던 전씨는 당시 5·18 관련자로 수감돼 학교에서 제적당한 상태였다. 1981년 석방된 전씨는 황석영 선생의 집을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녹음테이프 제작 등 5․18을 문화예술로 표현하기 위한 활동에 전념하고 있었다. 전씨는 '넋풀이:빛의 결혼식' 제작을 위해 카세트 녹음기 준비부터 참가자들을 모집하고, 역할 분담을 하는 등 모든 일을 전담했다.
군 입대를 앞둔 김종률씨는 작곡 및 기타를 담당했다. '갈릴리'라는 문화운동권 문화패에 몸담으며 노래와 마당극을 통해 5·18을 알리던 오정묵씨는 당시 '임을 위한 행진곡' 뿐 아니라 '젊은 넋의 노래', '에루와 에루얼싸' 등 넋풀이 수록곡 중 3곡의 메인보컬을 맡았다. 1년차 교사였던 임희숙씨는 오정묵씨와 메인보컬을 담당, 박기순 열사 어머니 역을 맡아 노래했다. 서울 한신대학원을 다니는 김은경씨 역시 보컬을 담당했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온 김선출씨는 꽹과리를 쳤으며 윤만식씨는 징을 쳤다.
장엄한 노래가 어둠을 뚫고 새벽을 갈랐다. 카세트녹음기를 이용해 단박에 녹음을 끝냈다. 이어 노래를 복사한 테이프 2,000여 개를 만들었다.
노래극이 만들어졌지만 엄혹한 신군부 눈을 피해 공연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저 조금씩 입으로 불리워지던 이 노래는 한신대학원생인 김은경씨를 통해 처음으로 공연됐다. 김씨는 그해 5월 학교 축제에서 노래굿을 불렀다. 당시 한신대학원은 학생 뿐 아니라 교수들 역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임을위한행진곡의 임은
1980년 5월 당시 광주의 정서를 가장 잘 전달하고 있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 5월 27일 5·18 민주화운동 중 전남도청을 사수하다 계엄군에게 사살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과 1979년 노동현장에서 '들불야학'을 운영하다가 사망한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이 모태였다. 둘은 모두 들불야학 강사로 활동했다.
1978년 전남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은행에 취업했던 윤 열사는 노동현장에 투신해 '들불야학' 강학(교사)으로 활동하다가 80년 5월 당시 시민군 대변인을 맡아 내외신 기자들에게 항쟁의 대의를 설명하는 역할을 했다.
또 광주의 현실을 알려주는 각종 선언문과 '투사회보'의 편집·제작 등을 맡았고, 계엄군의 마지막 진압 작전 때 전남도청 2층 민원실에서 끝까지 남아 있다가 계엄군 총에 맞아 숨졌다.
박기순 열사는 1978년 전남대 민주교육지표사건으로 강제 제적을 당한 후 신분을 속이고 노동자로 취업했다. 그해 7월 들불야학 창립을 주도한 박 열사는 야학 살림은 물론 운영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그해 12월 25일 자신의 자취방에서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했다. 야학의 중심인물이던 박 열사의 사망은 야학 지도교사들은 물론 학생들에게도 큰 충격을 줬다. 당시 들불야학 교사였던 윤 열사 역시 이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들은 1982년 2월20일 정오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 영혼결혼식을 통해 하나가 됐다.
임을위한행진곡 음원
임을위한행진곡 악보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 동지는 간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는 안다 /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 동지는 간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 새 날이 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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