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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명선생의 창의거병정신

충효, 애국, 선비의 정신 고경명 선생

창의거병도

우리 역사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침략자를 무찔러 위대한 승리를 거둔 기록으로 점철된다. 의병들이 금산벌판에서 왜적들과 대항하여 한결같이 충의의 신념으로 그들을 무찌르다 순절한 거룩한 정신은 우리 민족사에 길이 빛나고 스스로의 힘으로 나라를 지킨 위대한 구국의 정신은 후손들에게 교훈이 되고 있다.

60세의 노구로 의병대장을 맡아 6천명의 의병을 이끌고 금산 전투에서 순절한 고경명 선생의 충효, 애국, 선비의 정신을 요약 하면 다음과 같다.

충효정신

의병장 고경명선생은 60세의 고령으로 말위에서 격문을 지어 각 도에 보낸 내용에 "경명은 민심의 晩節위에 ...... " "
중류에 떠가는 뱃전을 두들기며 스스로 의로운 충성을 허락하였다. 이는 오직 대마의 주인을 그리는 정성을 품었을 뿐이요, 모기가 태산을 짊어진 격인 자기힘을 요량하지 않는다 ......"
여기서 선생의 단심과 절개는 한마디로 충성이었다. 이것이 그대로 선생이 평소 가훈으로 남긴 저 "世篤忠貞"의 忠이었다.

그런데 이때의 충은 다음 "도내에 보낸 격서"에서 孝와의 관계가 더욱 깊은 한국적 신념으로 승화되고 있다.
"근년 이래로 유도가 크게 일어나 임금을 섬기는 대의를 어느 누가 익히지 않았으리오......"
지금은 적의 형세가 크게 꺽이고 왕명이 날로 신장되어가니 이야말로 대장부 공명을 세울 기회요, 군부에게 보답할 날이다. ......
마땅히 피눈물을 뿌리고 전장으로 나가서 조금이라도 임금의 은혜에 보답해야 할 것이다. .....
무릇 우리 도내 사람들은 아비가 아들에게 명하고 형이 아우에게 전하여 의도를 규합해서 함께 일어나게 하라. 속히 결단하여 선을 따르도록 하라. ......"

여기서 효와 충은 그대로 하나로 만나고 보다 넓은 대의와 종선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선생의 순국을 몰아적 지선을 통하여 군신과 부자와 동포와 형제가 참되게 만날 수 있었던 실로 위대한 창조, 그것이 바로 고경명선생 3부자의 순국에서 찾아야 할 참다운 충효 정신인 것이다.

애국 애향 정신

선생이 "도내 각계에 보내는 격문"에 의하면 오직 우리 도는 본래 병마가 정강하다는 말이 있다. 성조때 황산성 즉 지금 남원 운봉현에서 이성계가 왜구의장 아지판도를 사살하여 큰 승리를 거둔 것은 조선황조를 창건하는데 큰 기초가 되었으며 명종때 왜구가 침입했을 때 이윤경이 랑주(영암)에서 왜구를 무찔러서 한명도 놓치지 않고 왜선 하나도 도망가지 못하게 하였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어 크게 빛나는 일이거니와 그때에 용감하게 진중에 뚜이어들어 장수의 목을 베고 깃발을 빼앗은 자는 전라도 군사가 아니었던가......

유독 오늘에 와서 의기가 박약하여 공포에 떨어 스스로 무너니고 일찌기 한사람도 기력을 내어 적과 싸우겠다는 사람이 없으며 제 몸과 제 처자를 보존하는 데만 급급하여 서로 피할 길만을 찾되 행여나 뒤질까 걱정하는 형편이니 이는 보는 사람이 너무도 나라의 은혜를 저버릴뿐만 아니라, 또한 제 조상을 더럽히는 일이다. 사대부가 공명을 세울기회요, 군부에게 보답 할 날이다."

이러한 선생의 애국사상은 곧 애향사상에서 우러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는 바, 도민들로 하여금 이러한 애향심을 북돋아 준것은 참으로 선생의 애국사상과 애향 애족 사상을 그대로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전라도 순찰사 이광에게 근왕군을 일으키라는 서한에서 "절하가 이 시기에 진실로 군사를 널리 모집하여 크게 형세를 떨치지 못하면 우리 호남백성들이 장차 모두 적의 칼날에 쓰러지고 말 것이니 절하가 위로 국가를 회복하지 못하고 아래로 한 지방도 보전하지 못하고 있다가 하루아침에 아군이 적을 다 무찌르고 임금께서 환궁하시와 한장의 교서를 사방에 포고하게 되면 비단 호남 사람만 천지의 사이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뿐 아니라 절하 역시 어떻게 충성을 다하여 과거의 허물을 보상하는 경지를 마련하렵니까...?"

이와 같이 선생의 글속에 항상 깃들고 있는 선생의 사상은 애국 애족사상이며 임금에의 충성과 일치하는 것이며, 가문의 영광과 일향의 명예가 바로 애국 애족사상의 기반이 된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이다.

선비정신

월강 윤근수가 선생에 대한 시장에서 "공은 본래 군여의 일에는 익숙하지 못했으나 개연히 장단에 오르며 노병을 이유로 사양하지 않았다." 하였으며 실로 참된 선비인 용과 행이 있었으며 선비의 도인 문무겸전함을 찾아볼 수 있다.

그때 사정의 기록을 보면 "적이 금산을 점령함에 있어 문무를 막론하고 사태의 이 불리를 헤아리지 않고 친히 범의 굴에 들어가 적과 혈전을 벌려 몸을 나라에 바쳤으니 ......" 에서 선생의 불멸의 용기와 선생 시장 마지막에 "국가에 난리가 일어나 長蛇封豕 같은 악독한 왜놈들이 백성을 살해하는데도 按臣은 움츠려들고 무장은 무너져 달아나고 오직 시골로 돌아온 하나의 유신으로 封彊 군수의 책임도 없는 이가 마침내 의로운 군사를 이끌고 막강한 적에 저항하여 약한 힘을 크게 떨치고 굳건히 왜군을 무찔러서 나라에 보답할 것을 맹세하였으나 필경 공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목숨을 깨끗이 바쳐 부자가 함께 죽었으니 다른 사람들의 절사에 비하면 더욱 열렬하다 하겠다.

세상에서 날마다 "문인이란 실용의 가치가 적다"고 나무라고 앝보던 그 자들도 대개 이에 이르러서는 다시 입을 놀리지 못할 것이니 "공은 어찌 한 시대의 전인이 아니겠는가?"라 하여 선생의 문무겸전한 수기치인의 전인을 지향하는 참된 선비정신의 진면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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