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효동 요지 소개
도자기는 묽과 흙, 그리고 불의 숨결로 빚어진다. 무등산은 이 세 요소를 고루 갖춘 도자기 생산의 최적지였다. 그 시작은 고려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왜구의 침입으로 강진의 사기장들이 전국으로 흩어졌고, 일부는 금곡동·충효동 일대 무등산 자락에 자리를 잡았다.
충효동 요지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63년 국립박물관의 가마터 발굴조사에서였다. 이때 청자·분청사기·백자가 차례로 쌓인 퇴적층이 확인되었고, 15세기 조선 도자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며 1964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이후 1991년 국립광주박물관의 2차례에 걸친 발굴조사에서 총 4기의 가마가 확인되었는데, 2호 가마는 거의 온전한 상태였고, 3·4호 가마에서 생산된 도자기의 폐기물 퇴적층(깊이 3m)에서는 분청사기에서 백자로 이행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
충효동 요지에서는 접시·대접·항아리·병·장군·잔 등 다양한 종류의 그릇이 제작되었다. 특히 보·궤 등 제기류의 비중이 높다는 점은 우리 지역만의 특징이다. 또 생산지명, 납품 관청, 제작 사기장, 제작 시기 등이 새겨진 명문이 발견되어, 이곳의 도자기가 국가 재정을 위한 공납자기로 중앙에 납품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용무늬가 표현된 접시·장군·병과 ‘어존’ 명문 잔의 출토는 왕실 도자기 생산지였음을 보여준다.
무등산이 제공한 뛰어난 원료와 사기장들의 숙련된 기술이 어우러져, 조선 전시 분청사기의 꽃은 이곳 광주에서 찬란히 피어났다.
